728x90

감정평가 공부를 하면서 가치와 가격의 차이는 감정평가 이론에서 제일 먼저 다루고 가는 부분 중 하나다. 각각 정의가 있고 이를 심도있게 학문적으로 따져보기도 한다. 이론문제에서 만약 이렇게 나오면 생각보다 매우 쓰기 어려울 것 같다고 항상 생각했다. 너무나 기본임에도 항상 안개속을 헤매고 있어서 외우지 않으면 잘 까먹는다.

 

그런데 이번에 내집마련에 머리를 써보니 그 차이가 뭔지 이제야 알겠다. 이론을 떠나 실질적인 수요자 입장에서 가치와 가격의 차이를 알겠다. 이건 약간 뇌피셜도 섞어서, 내 마음대로 정의를 섞어서 정리해본다. '가치'란 그 부동산이 정말 가지는 핵심 기능을 말한다. 이 가치는 꽤나 모습이 다양하다. 개개인에 따라, 목적에 따라, 정책에 따라 매력도가 천차만별이고 시시각각 변한다. '주택'이라면 살기 좋은 기능이 제일 우선일 것이다. 여기엔 실질적으로 정말 여러가지 요소가 들어갈 것이다. 개개인에 따라 지니는 가치도 너무 다르다. 사람에 따라 강이 보이면 돈을 더 줘서라도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강을 무서워해서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두 사람은 강에 대한 가치가 현저히 다르다. 하지만 '가격'은 어떨까. 강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강을 볼 수 있는 아파트가 수천만원 혹은 수억원이 더 비싸다는 사실을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을 것이다. 그걸 강의 '가치'라고도 볼 수 있지만 나는 그건 수요자들이 생각하는 가치보다는 시장에 내놨을때 매겨지는 '가격'이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가치는 너무도 다양하고 목적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격'은 가치개념과는 조금 다른 식으로 '작동'하는 하나의 체계이고 시스템이다. 내가 직장이 멀든 가깝든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역세권'이 중요한 것이다. 마치 수치화되어진다. 이 세상 수많은 아파트들이 하나하나 다 제각각의 가격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다 하나의 방향성을 가지고있다. 경제 주체들이 어느정도 예측이나 측정을 할 수 있게 하나의 수치화된 지표가 가격이라고 본다. 예컨대 주택지라면 가격형성요인으로 가장 중요한게 '쾌적함', '학군', '접근성', '생활 편리 시설'일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 신축 아파트 홍보에는 다 저것들에 대한 문구가 들어간다. 주거환경, 학군이 좋음, 무슨무슨 도로에 접근하거나 지하철 몇호선 개통, 백화점 확정 이런 식이다. 이때 내가 백화점을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나만의 '가치') 백화점이 있다면 비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백화점을 심지어 싫어한다고 해도(내가 생각하는 가치에는 영향이 없더라도) 백화점이 있다는게 하나의 채점항목처럼 여겨져서 제 3자들이 보기엔 확실한 가격지표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의 시스템으로 움직이는게 가격이다. 나는 재택근무를 하더라도 역세권이면 더 비싼 돈을 주고 가는 것이다. 그게 바로 가치와 가격의 차이.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가치'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고 생각해도, 시장에서는 그 가치를 상회하는 가격에 팔리고 있는 것을 많이 봤다. '아 저긴 학교 다니기 힘든 곳인데'라고 생각해봤자 시장에서는 '학군 좋음, 초등학교 1km내'라고 표시되며 이는 무조건 좋은 요인으로 일단 매겨진다. 실제로도 내가 사는 지역 옆단지에 지어진 신축 아파트는, 이 동네 20년 살면서 초,중,고 나와보고 대학과 직장은 서울로 다녀보기까지 해본 내가 보기엔 신축 외에는 메리트가 별로 없어서 같은 가격이면 굳이 살고 싶은 마음은 없던 곳이었다. 심지어 주차난도 심하다고 한다. 신축임에도 말이다. 그렇게 내가 내 스스로 가치를 가늠해보면 뭐하는가. 그것은 그저 꼰대같은 내 마음의 지역 텃세일뿐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가치의 거의 2배로 그 지역 대장아파트로 잘만 나간다. 가치와 가격의 괴리란 이렇게 크다. (아니면 내가 똥 촉)

 

맨날 감정평가 이론에서 나오는 가치와 가격 생각해봤자 실생활에서 한 번 느껴보니 딱 알겠다. 가치와 가격은 그렇게 괴리가 있다. 내가 아무리 가치를 따져본들 그 모든 수천가지 요소의 가치를 다 따질 수도 없거니와 그걸 따진다 한들 오히려 그건 개개인의 가치일 뿐이다. 와 이동네 뭐가 있다고 다 10억이야? 할게 아니라 그냥 그 동네가 10억이면 10억이다. 요즘은 살아있는 부동산 공부를 하며 좌절감을 좀 더 생생하게 느끼고 있다.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동안 우리 아파트 주변을 '좋다'고만 생각했고 정확한 시세를 잘 몰랐다. 잘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꾸준히 열심히 잘 살면, 때되면 대출없이 매수하거나 운좋게 분양이 되겠지 하고 진짜 막연하게 생각했다. 상승장은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기도 했다. 대학교때 내가 사회로 나와서 맞닥뜨린건 잠깐의 호황기 뒤의 금융위기사태로 바닥을 치는 부동산 경기였다. 그래서 더욱 별 생각이없었다. 때되면, 열심히 하면 집을 그래도 어느정도 적당히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기도하면 온 우주가 도와줄 것도 아닌데. 하지만 이번 부동산 대책에서 얻어터지는 그 무주택 3040에 끼면서 현실을 직시했다. 기도한다고 분양이 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저 아파트에 혹한 점수를 매긴다 한들, 시장에선 그런게 아니다. 너무 그 차이를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나도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 나에게 주는 가치는 그저 그런데, 다들 좋다고 하고 시장에서 높이 평가돼서 가격이 엄청 높은 곳을 선택할 것이냐(선택한다고 받아주는건 아닌데 설레발은), 아니면 오로지 내가 살기에 완벽한 어느 지점을 노릴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분양이든 매수든 기본적인 생각이 그렇다. 나는 그닥...이라고 해봤다 다 부르는게 값이다.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이 집이 2억은 오르겠지'하는 마음이 생기면 약간 내 가치관도 행복한 쪽으로 갈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은 알 수 없는 것. 그 불안함이 불편한 성격인 나는 참 살기가 힘들구나.ㅋㅋ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