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마켓에 영어 동화책이 저렴한 가격에 올라왔길래 샀다. 레벨 2~4라고 하는데 뭔지는 모르겠고 유치원 아이들이 읽을 수 있을만한 정도의 수준인 것으로 추정됐다. 아마 영어유치원이나 유치원 영어 특강 정도에 사용했던 책인 것 같다. 들고와서 보니 상태도 좋고 글밥도 딱 적당한게 아주 맘에 들었다(아직 4개만 열어본건 함정) 신나게 읽어줬다. 마치 내가 읽은 문장을 아이가 쏙쏙 이해하고 바로 아웃풋을 해줄 것 같은 막연한 행복회로가 돌아가기도 했다. 우리 아들은 따라하는걸 잘 해서 아마 지금 영어로 말한다고 해도 나는 그게 영어실력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따라하기 능력이라고 들뜬 마음을 가라앉힐 자신이 있다. 결국 따라하는 능력이 언어능력에서 매우 중요한 것도 사실이긴하지만, 아이의 모든 행동과 아웃풋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도 결심했다.
아이는 영어뿐만 아니라 내 한국어 자체를 엄청 잘 따라한다. 내가 보통 사람보다 말이 정말 빠르고 많다. 내가 급하게 누군가에세 정보를 쏟아낼때(가령, 엘레베이터가 거의 도착했을때 친정엄마에게 잊었던 전달정보를 빨리 전달할 때처럼) 말하는걸 비슷한 속도로 다 따라해서 엄청 웃길 정도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이걸 역이용(?)해서 영어로 괜히 말해보고 따라하게 시켰다. 결과는 당연히 좋다. 곧잘 하는게 아이 특유의 순수한 느낌의 발음이 너무 좋아서 자꾸 시키게 된다. 이럴 때 또 다짐한다. 오바하지 말자. 지금은 그저 나를 따라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10시간 들여서 가르치는걸 8살 이후에는 10분이면 알 수도 있다. 힘 빼지 말자.
연산도 곧잘한다. 남편이 귀여워서 기탄수학을 주르륵 사주곤 한다. 심심할때 뭘 할지 모를때 아들은 덧셈 문제를 풀고 있다. 나도 진심으로 5살에 학습지는 오바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곧잘 아니 잘 하는 아이를 보면 내면의 세포가 웃음을 짓고있는것같다. 그리고 일단 아이가 좋아하니까. 나는 아이가 좋아하는 걸 해주는 깨어있는 부모같다는 느낌까지 준다. 위험신호다. ㅋㅋ 내 아이는 그냥 그게 익숙할 뿐이다. 나중에 하면 더 잘 할 수 있다. 무의식 중에라도 너무 기뻐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너무 칭찬하면서 의도치 않게 아이에게 기대를 하지 않아야 겠다고 다짐한다. 아이는 기뻐하는 부모를 보고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할테니까 말이다.
코로나 시국에 그나마 10분이상 나에게 자유시간을 주는 것은 피아노다. 심플리 피아노라는 앱을 이용하면 박자도 신나게 맞춰서 피아노를 즐길 수 있다. 아이가 심심할때 하는게 피아노와 수학연산인데 그 중 피아노를 특히 좋아한다. 어제는 BTS의 Boy with luv를 양손으로 박자 맞춰서(앱에서 음악이 나오면 따라서 치는 시스템) 맛깔나게 치는 걸 보고 너무 들떠서 동영상을 찍고 양가에 동영상보내고 온갖 호들갑을 떨었다. 피아노는 예체능이니까 괜찮아! 하고 생각했지만 사실 한발자국 더 나아가면 이것도 또 무언의 기대를 주는 것일수도 있겠다 싶다.
과도하리만큼 요즘 이런 것에 신경을 쓰고 있다. '오바하지 말자'. 아이였을때 잘하는 것이 커서도 잘하는걸 절대로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 아이가 숫자를 좋아하는게 앞으로 카이스트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건 너무나 당연하다. 그저 아이가 좋아하는것을 찾는 긴 여행을 하듯이 아이 옆에 있어주자. 그리고 실제로 아이가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좋아한다고 할때 같이 즐겨주고, 같이 느낌을 공유하고 그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다.
아직도 나는 육아의 큰 방향을 정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일단 믿어주고 싶다. 우리 부모님이 그랬다. 중학교때 나는 성적우수상을 받고 졸업식날 단상에서 상을 받을 정도로 공부를 나름 잘했지만 스트레스가 있었나보다. 그때 진로를 고민하면서 요리고등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엄마는 나를 데리고 고속도로 어딘가에 있는 것 같은 외진 학교로 같이 상담까지 다녀왔다. 실질적 이유로 진학하진 않았다.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했을때는 미대에 관심도 생겼다. 그랬더니 또 우리 엄마는 바로 미술학원에 상담을 가셨다. 아 그리고 초등학교 시절에 재즈댄스 학원을 다녔었는데 우리 엄마가 상담을 오셨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선생님이 엄마에게 연락을 하셨나보다. 재능이 있으니 이쪽으로 진학을 해보면 어떻겠나 하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걸 나중에 알았다. 유행하는 말로 '편견없는' 우리엄마다. 우리 엄마는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다 믿고 같이 해주셨었다. 지금은 어찌보면 그런 엄마아빠의 노력에 비해 무지 평범한 삶을 살고 있어서 죄송스러울 지경이지만 그때 부모님의 모습이 나에게는 자기 효능감으로 남아있다. 뭔가를 하고 싶은 때 해볼 수 있겠다는 실행력 그거다. 그게 가장 중요한것같다. 결국 나는 우리 부모님에게 받았던 사랑만큼 아들에게 해줄 수만 있다면 괜찮을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아이가 하고 싶다는게 있을때 같이 시도해볼 수 있도록 자기 효능감, 공부정서 이런 것들에 조금 더 신경을 써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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