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매년 터지는 비염이 제대로 터졌다. 나도 같이 터졌다. 병원을 갈 생각은 원래 안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애가 살짝 뜨끈하다. 이건 열이다. 온갖 상상이 들기 시작했다. 평정을 찾아 열을 재보니 놀랍게도 열은 정상이다. 37.5이상쯤 되려나 했는데 37도가 안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계속 온도 재는 사진이랑 동영상을 찍어놨다. 난 극도로 보수적이고 소심한 사람이기에 혹시모를 상황에 대비용,설명용이다. 아무리 재도 37이 안넘는다.
엄청 고민을 했다. 동선상 나는 문제가 없다. 설 이후 미용실도 안가고 애 머리를 바가지로 잘못자르기도 했고, 마트도 간적이 없다. 주변에 확진자도 없다. 그래도 나는 마지막 1퍼센트가 항상 찝찝한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와 관계 없이 생각을 해도 또 그건 그것 나름대로 문제다. 이맘때쯤 바람이 살짝 차가울때 아이는 목감기가 항상 왔었다. 내 생일이 6월인데 그때도 목이 살짝 붓기만 하면 열이 많이 났다. 내 생일날 병원대기하며 인증샷 찍었던게 기억난다. 코로나가 문제가 아니라, 만약 이걸 방치했다가 목이 많이 부은거면? 밤새 고열이 생길 것이라고 5년 빅데이터가 예측하고 있다. 고열이 나면 코로나때문에 응급실이니 선별진료소니 생각하면 머리가 아팠다. 검색해보니 어떤 곳은 애가 열이 난다고 하면 오지 말라고 한다고도 했다. 그래서 차라리 지금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차로 운전해서 병원에 간건 처음이다. 주차문제로 너무 걱정됐지만 그것보다 더 큰 걱정이 있기에 용감하게 길을 나섰다. 자차로 이동하는게 아무래도 여러모로 깔끔하니까. 올라갈때도 계단으로 올라갔다. 항상 대기가 많던 병원도 아무도 없다. 앞 환자 한 명. 접수대에서 열이나 이런거 특별히 물어보는 상황은 없었다. 나도 일단은 코로나나 열때문에 온것도 아니지만(기침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을 생각해서 결백을 증명할 다양한 증거가 있었다. 그래야 혹시 무슨 일이 닥쳐도 '와 진짜 개념없다'하는 욕을 덜 들을 테니까. 그런 생각만 나더라.
평소처럼 진료실에 들어가서 '매년 오는 비염같다. 열이 있는것같았는데 열은 36.8도 정도다. 찬바람에 킥보드타서 목이 부은것같다' 정도 설명했다. 의사샘은 우리가 단골(?)이니 알아서 봐주신다. 다행히 목은 많이 안부었단다. 다행이다. 그리고 코만 좀 꽉찬 정도. 나는 우리집 체온계가 고장일 가능성에 대비해 열을 재보고 싶다고 했다. 의사샘이 원래 애기들 아침에 따뜻하다고 뭘 그정도로 열을 재보나 하는 뉘앙스로
말했다. (기분나쁘게 한건 아니다) 그래도 난 혹시나 해서 재달라고 했다. 결과는 36.2. 민망했으나 안도감이 들었다. 됐어. 다행이다.
신속하게 나와 약국에 가서 약도 처방 받았다. 항생제도 없는 코미시럽을 받고 아이와 신나게 나왔다. 항생제는 맛이 너무 없어서 빨간약만 받은 아이도 기뻐했다. 바로 아랫층에서 똑같이 파는 구미젤리가 여기선 500원이 더 비쌈에도, 그냥 오늘은 약국에서 사줬다. 굳이 다른 공간에 또 다른 동선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런 극도의 보수적인(?) 사람이다.
코로나로 병원가는것도 너무 무섭고 걱정된다. 나때문에 누군가가 피해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린다. 아이와 너무 답답할때 집앞에서 탔던 킥보드가 야속했다. 아이는 오늘 킥보드로 주차장을 돌지 못하고 들어갔다. 그래도 이렇게 마무리된걸 진심으로 다행이고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이 시국에 열이라도 심하게 나면 거쳐야할 각종 심리적 장벽과, 절차들이 산더미기에. 나는 담담하지 못한 일희일비 애미라, 겪어야할 걱정을 미리 사서 걱정했다. 그래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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