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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얼굴에 짙게 주름이 생기기 시작한다. 예쁘고 말고 하는 주름이 아니다. 인상에서 괴팍함이 느껴지려고 한다. 의식적으로 표정을 핀다. 40이 되면 내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에 공감했기에(내가 40대도 아니면서) 앞으로를 위해 더욱 내면을 가꿔야겠다.

내가 그동안 동안이었다면 그건 내가 성격이 원래 긍정적으로 좋아서가 아니다. 다 주변의 도움, 특히 부모님의 사랑과 보살핌이 10000프로 반영됐을 것이다. 내가 밝은 만큼 우리 부모님의 시름이 깊었으리라.

나도 요즘 아들 때문에 인상이 써진다. 어제 거울을 보고 더 속상해서 이미 혼내는 와중에 약간 더 짜증이 났던 것 같다. 하지만 엄마들이라면 알 것이다. 아이들이 일부러 그런것도 당연히 아니고 그건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것을 말이다.

아이는 집안에서 가장 약자다. 그런 약자에게 내가 화풀이를 하면 안된다. 게다가 이 아이는 아무런 나쁜 의도가 없다. 그걸 알고 있는데 순간 욱해서 화를 내면 그 다음에 밀려오는 죄책감과 후회와 절망이 너무 크다. 엄마들이 느끼는 육아의 힘듦이 바로 이것이다. 나의 경우도 그렇다.

오늘도 정신수련을 하며 하루하루를 충실히 보내보려고 하는데 이미 한번 썩은 마음에 곰팡이처럼 피어나는 부정의 기운은 어찌할 수가 없다. 그러면서 도를 닦는가보다.

내가 이렇게 아등바등 해서 얻어낸건 무엇일까. 뭐라도 내 워킹맘 생활의 명분과 정당성이 있어야만 한다. 이렇게 귀하고 금쪽 같은 내새끼 잠도 잘 못자고 애정결핍에 시달리게 한, 그 뭔가의 가치가 있어야만 한다.

다행히 실마리는 생겼다. 내가 그냥 내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고 끊임없이 고민하게 해서 제2의 인생길을 비춰준 것 같다. 아마 육아만 했으면 불가능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워킹맘으로서의 1년 반은 힘들기만 했지만 힘듦 속에서 또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했다. 또 내가 전업맘으로서 살았어도 생각보다 완벽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런 마음으로 항상 긍정적으로 살아야지. 이마에 주름이 자리잡지 못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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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아이는 오늘 1019일이다. 지금 내 최대 관심은 배변훈련이다. 해준건 소변기랑 대변기 준비준비한 것 없고 쉬는 이렇게 하는거다 응가는 이렇게 하는거다 하고 말한 정도다.

아직 응가는 한번도 시도도차 제대로 하려고 하지 않고, 그냥 응가 마려울 때 재미로 몇번 바지 내리고 앉아서 노는 정도고, 실제로도 응가는 좀 오래 걸리는 편인 것 같다. 주변 사례를 보면. 쉬랑 응가랑 6개월 정도까지 차이난다는 것도 들어봤다. 난 뭐든지 천천히 할 계획이다. 우리 친정엄마도 배변훈련 절대로 억지로 시키지 말라고 항상 강조하셨고, 왠지 모르게 나도 굳이 기저귀 일찍 떼면 왠지 모르게 아쉬울 것 같았다.

이래저래 천천히 흘러가지만 하는 시간. 어린이집 친구들이 슬슬 대소변을 가린다고 한다. 근데 우리 아이는 유독 관심이 없다. 먹기 싫다는 밥 좀 먹인 적은 있어도(요즘엔 안먹이지만) 쉬랑 응가 억지로 뭐라도 해보려고 한적은 단 1도 없다. 그래서 늦는걸까? 주변 아이들에 비해서는 통상적으로 조금 느린 편은 맞다. 요즘 시대에 통상적 으로.

그러다 어제 어린이집에서 산타행사가 있었다. 엄마들이 다 와서 아이들이 산타할아버지랑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아이가 갑자기 나를 휙 돌아보더니 엄마 나 쉬!’하는 것이다. 평소에는 목욕하다가 재미로 쉬한다고 한 적은 많아도, 평소 생활할 때 쉬한다고 표시한 건 처음이다. 나는 너무 기특하고 신이 났다. 애를 들쳐업고 가서 어린이집 아이변기에 딱 세워놨다. 그랬더니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너무 깜짝 놀랐다. 게다가 평소처럼 찔끔도 아니고 정말 소변을 봤다!.

 나는 정말 너무 신기했다. 쉬를 한것도 신기한데, 어린이집에 온 엄마한테 멋진 모습 보여주려고 한 것 같았다. 표정에는 자랑스러움이 넘쳤고 쉬를 하고 나를 딱 돌아볼 때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이가 나한테 이거 보여줄라고 굳이 쉬한다고 말해주고, 멋지게 해낸것같았다. 나는 기분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물론 이래놓고 밤에 화는 조금 냈지만.

엄마라는 존재는 이렇게 힘이든다. 힘이 들어서가 아니라 한 존재에게 이렇게 큰 힘이 되는 사람이라서. 하루하루 커가는게 너무 아쉽고 또 둘째들의 사랑스러움을 내가 많이 봐왔지만, 이렇게 큰 존재가 또 되기엔 나는 아직 그릇이 작다. 작지만 그래도 내 아들 하나만큼은 죽을힘을 다해 지켜내야지. 내 그릇 한도 내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줄 것이다. 꼭 경제적인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아들의 기쁨이 내 기쁨.

자연의 섭리에 따라 언젠간 서로 헤어질 수 있겠지. 그때까지 나의 존재는 너의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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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링을 너무 좋아한다. 그래서 볼링세트를 사줬다. 기똥차게 잘 가지고 논다. 그동안은 체스 말 같은걸 세워놓고 볼풀공을 가지고 놀았다면 이제 진짜 놀이용볼링핀을 가지고 노니 부딪히고 넘어지는 맛이 아주 손에 감긴다. 아들도 신나한다. 보올링 보올링 하고 좋아한다. 일어나자 마자 볼링할 정도다.

말도 폭발적으로 늘어서 깜짝 놀란다. 태연하게 문장으로 말하고 억양과 감정을 실어  말한다. 요즘 제일 잘 표현하는건 '똑땅해'. 어린이집에서 엄마 보고싶어서 속상하고, 아빠가 늦게오면 보고싶은데 못보고 자서 속상한것같다.

치카치카 보는것을 좋아하는 반면 직접 하는건 싫어한다. 양치때마다 전쟁이다. 그럴때는 "아빠가 이거 뺏어간대!! 얼릉하자!!"하면 까르르르르르 웃으면서 얼릉 하기도 한다. 이 약발도 이제 거의 다했다.

배변훈련은 슬슬 시작하는것 같지만 나는 아직 생각없다. 여름쯤 해보려고 한다. 응가 싼 후에 응가라고 말했던게, 요즘은 약 40퍼센트의 확률로 싸기 전에 말해준다. 말하자마자 바로 싸서 웃기다. 귀엽다.

목욕은 좋아하고 최근엔 샴푸모자에 빠져있다.(본인 기분이 일단 좋아야하지만) 샴푸모자를 쓰고 비를 맞듯이 조용히 있다. 슥 보면 슬쩍 웃고있다. 손으로 샴푸모자에서 떨에는 물을 느껴보고 있다.

밥은 한창 잘먹다가 감기약 먹으면서 입맛이 뚝 떨어졌다. 잘 안먹는다. 그래도 된장찌개랑 생선은 잘 먹는다. 마법의 반찬은 조기구이와 옥수수. 요즘은 수박을 제일 좋아한다. 양가 부모님께서 한통씩 사주셔서 지금은 수박부자됐다. 난 출산후 도통 돌아오지 않는 잇몸으로 수박을 먹을때 좀 힘들다. 이가 시리다.

아이는 분리불안이 조금 생겼는지 모르겠다. 유난히 나에게 집착한다. 그 집착이라는것이 신체적으로 딱 붙어있어야하는 것이어서 나는 14키로 조금 안되는 아이를 외출시 항상 안고다닌다. 아빠가 도와주지만 유독 나보고 안아달라고 한다. 잠시라도 내려놓으면 안아줘 안아줘 안아줘 하고 달라붙는다. 누가보면 내가 애 놓고 간적 있는줄 오해받기 딱 좋다. 안아주면 '꽉 안아줘'라고 한다. 그럼 한손으로 다리 밑을 받치고 한손으로는 등을 감싼다. 그러고 가만히 있음 차라리 편하다.  문제는, 안긴 상태에서 이것저것 호기심에 몸을 이리돌리고 저리돌리고 해서 무게중심이 자꾸 움직이면서 내 허리는 정신없이 하중을 견뎌야해서 굉장히 뻐근하다는 것이다.

엄마들은 이렇게 나이들어가나보다. 그래도 우리아들이 안아달라는데 안아줘야지. 이 순간도 또한 지나가리라. 그렇게 생각하면 1초가 소중하다. 근데 잘때랑 깬 직후는 좀 봐주면 안되겠니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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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세계 '스트레스'. 뭔가 명확하지 않아 꾀병같아 보일까봐 말하기 애매한 '스트레스', 만병의 원인이라 딱히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말하기 민망한 그 바로 그것 '스트레스'. 스트레스 안받는 사람이 어딨겠나 싶어서 굳이 생각해본적 없는 스트레스. 눈에 보이는게 아니라 설명할 수 없으면서도 몸을 지배하긴 하나보다. 긍정과(망각으로 인한) 낙관의 아이콘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스트레스성 위경련이라니. 근데 진짜 너무 아프다. 과장보태면 수술하고 배에 힘을 줄 수없어 못일어나는 상황과 비슷하다. 오늘 출근 못할까봐 아침에 놀랐다.

복직1년간 내가 얻은건, 33년만의 첫 위경련이구나. 오늘은 복직한지 1년되는 날이다. 육아가 얼마나 힘든지 설명하려면 10박 11일도 부족하지만 핵심은 이거다.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너무 힘들게 하는데,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맘 놓고 소리칠수도, 맘놓고 원망할 수도 없기에 꾹 꾹 눌러담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 아이를 너무 사랑하고 내가 책임지고 작고 연약한데
당연히 의도한건 아니더라도 나를 힘들게 한다. 최근 이게 너무 쌓여서 몇번 화를 냈다. 나도 내가 스스로 미쳤다고 생각하고 나를 놔버렸다. 내가 어떻게 비춰질지 생각할 여력이 없다. 화내고 수많은 시간을 괴로워하고 자책하고, 울면 좀 나아진다길래 펑펑 울어도 보고. 아이에게 상처주기 싫어서 어떻게든 똑부러지게 한다고 아무리 좋은 글을 읽고 책을 읽어도 소용이 없다. 소용이 없다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소리지르고 아우성을 쳐도 아무것도 풀리지 않는다. 난 누구한테 화를 낸 적도 없다. 그런데 내가 이 작은 아이에게, 반항을 할 수없다는 사실을 알고 막 화를 내거나 애써 외면했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 화낸 순간의 몇천배에 달하는 죄책감과 후회와 자괴감...이런것들이 힘들다. 겪지 않으면 모른다. 다른 엄마들도 다 힘들겠지.

이와중에 회사일도 한숨만 나온다. 말해 뭐해. 이러한 위의 상황이 최근 급격히 악화됐나보다. 너무 아파서 숨을 쉬고 내쉴때도 약간 통증이 있다. 물을 먹거나 음식을 먹어도 느껴진다. 주말이라고 쉬어본적도 없으니 하루만이라도 푹 쉬었으면 좋겠다. 집으로 출근하러 퇴근하고, 주말에도 육아출근이고 놀러가든 밥을먹든 단 한순간도 그냥 있을수가 없다. 칼퇴 하나 믿고 다니는데 나만 쏙 나오는것에 대한 미안함과, 미안하게 생각하게 하는 이 시스템이 또 좌절감을 느끼게한다. 난 버스시간땜시 칼퇴가 아니면 간발의 차이로 아이를 30분정도 늦게 본단 말이다. 하루에 두시간 보기도 벅찬데 이중 30분을 날려야하니, 요즘같이 일이 바쁠땐 눈치가 극에 달한다. 다들 속으로 욕하겠지. 그리고 슬슬 이거해라 저거해라 판은 벌려지고 아무도 수습할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는다.

이렇게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데 살은 1도 안빠지다니 또 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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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때마다 놀란다. 미묘한 어휘 차이까지 구사할 줄 안다. 엄마'만', 엄마'도' 이런걸 잘 구별해서 쓴다.

깜짝 놀랐어, 속상해, 친구들 보고 싶다, 이모는 집에 갔어?, 아빠 어디야?, 엄마 괜찮아?, 엄마 울어?, 엄마 피곤해?, 엄마 호~ 해줄까?, 오랜만에 이거할까?, 이건 아빠가 사준거야 등등 이제 거의 문장이 완성형이다. 아까는 아빠 못봐서 속상하다고 하고 쿨쿨잔다. 아참 이제는 말도 재밌게 한다. 아빠 자?가 아니라 아빠는 쿨쿨 자고 있어? 라고 말하는 것이다. 뇌의신비를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그리고 영어도 따라한다. 공부시키려는 의도는 아니었으나 잘 따라해서 신기해서 자꾸 말해주게된다. 알파벳은 몇가지 읽는데 이건 유튜브따문이다. 요즘은 헬로우, 하왈유?를 잘한다. 영어라는 개념보다는 그냥 따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들은 따라하는걸 잘 한다.

귀여움이 폭발하다가도 떼쟁이가 된다. 분리불안인가 싶을 정도로 나랑 붙어있으려고 한다. 진짜 퇴사를 고려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며칠 힘들었다. 정상적 사고가 불가능한 내 자체 판단이 아니라, 가족들의 걱정이 한몫했다. 복직 1년 맞이 센치함과, 피곤함 절정 맞이 피로감이 겹쳤다. 이시대의 모든 워킹맘들의 고민일테다. 그 고민을 1년하고 나는또 선택의 기로에 놓여져버렸다. 다음 포스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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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생생하지만 언젠간 잊을만한 것들을 열심히 적어보고자 한다. 블로그에 끄적였던 그 많은 사진들이 결국 육아일기가 됐던 것처럼. 요즘은 기록 중독이다.

다다음주면 700일을 맞이하는 아들은 요즘 색깔 맞히기에 재미들렸다. '파랑', '피융'을 좋아한다. 실제로 좋아하는 색은 초록색이다. 자주 보는 유튜브에서 색깔을 영어로 말한다. 연관 동영상이 거의 또 영어 색깔 영상이다. 아들 귀에는 그 중에서도 '핑크'가 잘 들리나보다. 가르친 적이 없는데도 분홍색만 보면 '피융', '핑꾸'한다. 그런 모습 하나하나가 사랑스러워 미치겠다.

친구들 이름도 잘 말한다. 엄마만 알아들을 수 있는 발음으로 말이다. 그걸 알아듣고 주변 사람들에게 '지금 아들이 이걸 말한거예요'라고 말할때는 마치 새로운 생물을 발견해서 알려주는 사람의 마음으로 빙의해 뿌듯함과 자부심에 가득찬다. 아들과 나만의 비밀암호같다. 그리고 그 비밀을 가족들과 공유하고(때론 내가 공유받고) 그렇게 아들이 가족들 사이에서 웃고 떠들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너무 좋다.

밥은 잘 먹는 편인데 먹는 것에 비해 살이 크게 찌는 편은 아닌 것 같다. 사실은 키가 계속 보인다. 하, 나도 어쩔 수 없는 욕망엄마구나. 반성한다. 어린이집 사진에서 아들이 조금만 작아보여도 신경이 쓰이는 것인데 그런 내 자신이 한심하다. 지금 몸무게와 키가 평생 가는것도 아니고 1~2센치 무슨 소용이랴. 그런 내 모습에서 불안함을 느낀다. 이러다가 나중에 친구따라 강남보낼 분위기다. 역시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선 모든걸 해주는 사람이 되는게 아니라, 확고한 원칙을 가지고 중심을 잡아주는 사람이 돼야할 것 같다. 참고로 지금 몸무게와 키를 제대로 재본 적도 없다. 부츠에 패딩에 옷 두겹 입고 13.9정도 나오면 그래도 13키로는 넘을 것 같은데, 집에서 재면 또 12키로 후반이기도 하고 오락가락한다. 키는 84~85정도 되는 것 같다. 사실 안재봤다.

이제 친구와 노는 개념이 좀 있는 것 같다. 키즈카페에 가면 친구랑 같이 놀자고 옆에 쓱 껴서 앉는다. 손가락질로 자기가 해보겠다고 나를 쳐다본다. 친구가 뛰면 같이 뒤따라 뛰어간다. 친구가 장난을 치면 똑같이 따라한다. 엄마가 하는 행동도 그대로 따라한다. 신기하고 귀엽다. 새로운 곳에 진입했을때는 많이 무서워하는 편이라 항상 "가~치,가치'하고 손을 잡아끈다. 여전히 겁이 많고 행동도 조심스러운 편이다.

 

 

엄마~~엄마~~ 엄마~~~소리를 한 20번 정도는 해야 뿌듯해한다. 엄마가 화난것 같을때는 아빠를 꼭 찾는다. 잠들기 전에는 엄청 많이 뒤척이는 편이다. 그러다가 자기 시작하면 프로슬리퍼다. 잘 자는 편이다. 이가 나거나 하는 시즌에는 중간중간 깨는 바람에 나는 그게 너무 힘들어서 차라리 아예 잠을 자지 않는게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조금이라도 자는게 낫다. 

엄마와 이제 어느정도 대화가 통하고, 어느정도는 그래도 협상이 된다. 그게 제일 재밌다. 예컨대 무언가를 달라고 조를때, '엄마한테 뽀뽀해주면 줄게'라고 했을때 조르륵 와서 바로 '쪽'하고 뽀뽀를 해주는 상황? 사랑스러워서 나는 또 정신이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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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사실 코딩이란 것을 잘 모르겠다. 체감이 되지도 않는다. 그래도 관심을 가지려고 하는건 아들때문이다. 언제나 생각했다. 아들에게 가장 물려줘야 할 것은 세상을 이해하고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라고. 아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들을 잘 모을 줄 알아야 할텐데 그러려면 세상에 대한 구조를 이해해야한다.

마치 이런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농업이 주를 이루던 시대에는 농업기술을 알아야 했고 땅을 가져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산업 혁명 후엔 어떤가. 농업기술이 아니라 컴퓨터활용능력이나 영어가 중요했을 것이다. 어렸을때 책장 한쪽에 있던 아버지의 TOEIC교재가 아직도 생각난다. 당시 아버지는 지금도 유명한 대기업의 대리 정도였을 것인데 그때 승진 점수가 400점인가였다고 한다. 지금은 900이 아니면 입사 자체가 힘든 세상이다.

“그런데 말입니다”.(상중 아저씨 빙의), 이제 또 돌아올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이런 영어 또한 그다지 필요 없는 기술일 수도 있다. 자율주행도 하는 시대에 통역이 무슨 소용일까. 점점 더 사람스러워지는 인공지능들이 통번역 정도(?)는 훌륭히 수행해버리지 않을까 싶다. 나도 현재 영어로 작성해야 하는 메일은 네이버 파파고나 구글 번역기를 이용하고 있다.

어쨌든 이렇게 세상이 변하고 있다. 그런데 그게 상상도 못할 세계라는 것이 불안하다. 그 격동기에 살아야할 아들에게 엄마로서 해줄 것이 없을까봐 불안하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세상이다. 그런 세상을 체화하지 못한 채 가르쳐 주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할 것이다. 4차 혁명은 커녕, 3차 산업시대에도 쩌리짱으로 있는 내가 뭘 알겠는가. 영혼을 불사질러 최대한 내가 알아보고 공부하고 도와줘야하는 것 같다. 헬리콥터 부모를 뜻하는게 아니다. 아들도 분명 언젠가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할텐데 그때 내가 열린 사고로 조언을 해주고 싶은 마음 뿐이다. 그러려면 내가 잘 알아야 한다.




어제 놓친 SBS스페셜을 보면서 코딩 교육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오늘 결제해서라도 다시 보고야 말겠다. 그런데 한가지 우려되는 부분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본질보다는 파생된 뭔가를 좇는 경향이 크다는 것이다. 코딩 기술과 응용방안에 대한 통찰은 없고 우리나라는 코딩 그 자체에 집중할 것 같다. 누가누가 더 다양한 코딩을 구현하나, 한정된 시간이 누가 더 많이 코딩을 하냐, 누가누가 더 복잡한 코딩을 할 수 있을 것인가가 점수화되어 또다시 성적으로 줄을 서게 될 것이다. 코딩이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지는 뒷전일 것 같다. 왠지 그런 느낌이 든다. 실제로 나도 자격증을 알아보기 위해 검색을 하면 십중팔구 학원 광고다. 코딩이 문제가 아니라 코딩이 뜨니까 이게 사업모델인 것이고 이 사업모델로 성공을 하려는 기존 세대의 야망이 담겨있다.

하다못해 나도 현재 회사에서 코딩교육을 기획하려고 준비중이다. 이제 나도 구시대의 아이콘이 돼가려고하고 ‘전 코딩의 코자도 몰라요. 모르는 사람이 누군가를 가르치는게 맞는지 모르겠어요.(직접 가르치는건 아니지만 기획이라는게 그러하다고 생각)”라고 해봤자 돌아오는건 ‘그래도 해야한다’는 내부의 ‘으쌰으쌰’. 내 아들은 이런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다. 차라리 기술을 배우라고 하더라도 과연 어떤 기술을 배워야하는지가 가장 관건이다. 아이가 언젠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때, 그 직업에 대해 내가 설명해주고 예상되는 이익과 어려움을 설명해줄 수 있길 기대한다. 그런 멋진 아들의 스승이 되기 위해 더 나은 사람이 돼야겠다고 오늘도 다짐해본다. 아들로 인해 내가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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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을 붙여서 한다. 이전까지는 한 단어로만 얘기했었다. 귤을 달라고 할때는 '주세요'만 한다든지 '뚤!'했다. 그런데 이제는 '뚤 아찌아(주세요)~'라고 했다. 심지어 자다 깨서 '물 아찌아'하고 엄청 자연스럽게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정말 신선했다. 와 이제 진짜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단어를 단지 소리내서 비슷하게 말하는 데에서 나아가 자신이 뭔가를 문장을 만들어사 표현하기 시작한것이다.

그리고 갑자기 숫자를 읽기 시작했다. 죠니 친구가 숫자를 읽는다고 해서 너무너무 신기했는데 얘도 시키니 따라하네? 오. 신기하다. 갑자기 또 번뇌가 꽂힌다. 내가 결국 가르쳤어야 하는 것인가. 또 쓸데 없는 걱정. 하지만 이로써 한가지 또 고민되는 점이 생겼다. 아이에게 어느정도의 교육을 해줘야하는가. 아직 아이가 어리기도 하지만 세월은 빠르게 흐르므로 곧 교육에 관한 가치관을 정립해야 할 시기가 올 것이다. 이제 슬슬 옆에서 영어로 말하는 애가 나오기 시작하면 '영어를 가르쳐야 하나 말아야 하나' 또 귀가 팔랑팔랑 거릴지도 모른다. 맞는 교육방식은 없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일관적으로 대응하면 된다. 이렇게 생각은 하지만 나란 인간의 정신상태는 한낱 갈대와 같다.

오늘은 어린이집에서 또 다쳐왔다. 크게 다친게 아니라 다행이라고만 생각해야겠다. 친구한테 긁혀서 눈썹쪽에 상처가 났다. 어린이집 원장님이 피부과에 데려갔다. 불과 2주만의 일이다. 자꾸 이런 일이 발생하니 나도 속상하고 선생님은 곤란하다. 어린이집이 문제가 없다는 가정 하에 그분들도 참 난감할 것이다. 내 맘 속도 찢어지지만, 어디 하소연한다고 되는 문제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린이집을 당장 그만둘 것도 아니고. 이래저래 속상한 밤이다.

아참 그리고 코피도 났다. 코에 피딱지가 있는게 보였다. 얼마전에 코피가 나서 병원에 갔는데 당연히 큰 문제는아니고 비염기가 있고 건조해서 핏줄이 터진 것 같다고 했다. 그게 다시 문제가 된 것 같다. 어린이집에서 딱히 언급이 없이, 오늘 얼굴을 긁혀오니 속상해서 내가 굳이 문자메세지로 선생님께 코딱지에 대해 물어봤다. 다행히 줄줄 흐른건 아니고 약간 피가 묻어나오는 정도고 통상 있을 수 있는 수준이라 딱히 언급은 안했다고 한다. 선생님도 많이 죄송해하고 나도 이런 상황이 너무 불편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선생님에 대해 실망하거나 못믿겠는 것은 아니다. 평소에 우리 아들 많이 예뻐해주시고, 이런 아기들을 두세명씩 돌보는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아이들은 1초만 안봐도 사고를 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그저 내 마음이 답답하고 속상할뿐.

할 일은 많은데 자꾸 더 많아지고, 애는 다쳐오고 그냥 마음은 답답하고.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어야 마음이 평안하다. 전자책을 잔뜩 또 빌렸다. 나는 아무것도 사실 집중할 수 없는 상태다. 멘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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