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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배변훈련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어린이집에서 선생님이 한번 해보자고 하셔서 시작됐다. 일생일대의 큰 이벤트를, 엄마인 내가 아니라 선생님과 하게 되니 아이에게 미안하다. 내자식 똥오줌도 어쩔땐 힘든데 선생님들 정말 존경스럽다.

친정엄마가 배변 훈련을 절대로 강압적으로 하지 말라고 해서 나는 정말 느긋했다. 배변 못가리는 성인은 없지 않은가. 그리고 때가 되면 다 한다고들 했다. 그래서 안했는데 어린이집에서 적극적으로 해보자고 하셔서 어느순간 애가 팬티를 입고 하원을 하기 시작했다. 그날 나도 몰랐고 시터이모도 몰랐기에 언제나처럼 밥먹으면서 응가한다고 하는 아이를 느긋이 봤더랜다. 그러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시터이모가 당황. 그렇게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됐다.

한번 시작하면 일관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제 항상 변기에 해야한다고 알려줘야한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자다가 일어나서(아직 변기에 쉬하는 확률이 50%정도일때) 나를 깨우면서 '엄마 나 쉬할래' 이러는 것이다. 기저귀에 해도 되는데? 하고 나는 너무 피곤한 나머지 그냥 쉬를 하게 했다. 기저귀를 채워놨으니 문제없었지만 다음날 후회했다. 강압은 아니더라도 일관성을 보여줬어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날 퇴근 후 다시 아이에게 강조했다. 어제는 엄마가 너무 졸려서 그랬고, 이제 쉬 마려우면 자다가 어제처럼 엄마 깨우면 된다고 몇번이나 일러뒀다. 그러니 어제 또 이쁘게 알아듣고 새벽에 쉬한다고 엄마를 깨웠다. 나는 새벽 2시까지 동영상 강의를 듣었기 때문에 매우 피곤했지만 매우 감격했다. 우리 아들은 참고로 물 매니아여서 자기 직전까지도 물을 마신다. 자러 들어가서도 3번 정도 물을 마신다. 잘때 쉬마렵기 딱 좋은 컨디션이다. 그래도 귀엽고 사랑스럽다.

또 어제는 응가를 어른만큼 하고 변기에 예쁘게 성공했다고 한다. 어린이집에서 변기에 성공 해본지는 한달정도 됐지만 매번 하려고는 안했고 그냥 체험학습처럼 가끔 해보는 것에 대만족한 상태였다. 그러다 집에와서 바지에 두번정도 똥을 싸보니 본인도 좀 찝찝함을 배운것같다. 어제 퇴근하자마자 자랑을 하는 아이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또 감격과 함께 후기를 생생히 들려준 이모에게도(사실 언니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젊으시다) 너무너무 감사했다.

최근 아이가 정신적으로 매우 커버린걸 느낀다. 말의 정교함은 물론이고 자기 주장을 관철시킬 줄도 알고 삐질 줄도 안다. 제대로다. 그리고 배변도 하기 시작했고 말이다. 이제 말장난도 칠 수 있다. 아이와 함께하는 인생은 이토록 치열하고 아름다운 것인가보다. 사랑하는 마음이 마구 뿜어져나오는 아이의 눈빛을 보면 하루의 피곤이 모두 풀린다. 아이로 인해 내가 또 달릴 수 있고 아이가 아니면 이제 내 삶의 의미는 크게 없다고 생각이 든다. 나하나 부서지면 그걸로 그만이다. 하지만 내가 부서지면 아이는 세상을 잃게 된다. 아이의 세상이 안전하고 행복하려면 내가 행복해야 한다. 오늘도 아이를 위해서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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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떻게하면 아이가 잘 생활할 수 있을까요? 아이를 올바르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라는 답에(설령 그 대상이 아이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법륜스님은 항상 이렇게 답한다. 다른 사람을 바꾸려 하지 마라.

나 스스로도 화는 나지만 화내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해도 계속 화가나는데, 어찌 나보다 훨씬 어리고 미성숙한 아이가 울지 말아야지 혹은 안그래야지한다고 바로 안할 수 있겠느냐. 이 말을 듣고 나는 전두엽을(아는게 전두엽밖에 없음) 망치로 맞은 느낌이 들었다.

아이가 말을 더듬어서 걱정이라는 분에게는 말 좀 더듬으면 어떠냐, 말을 더듬어도 엄마는 너를 사랑한다라는 마음으로 무조건적인 심적인 사랑으로 모든걸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라고 설명한다.

질문하시는 분들의 목소리를 들으면 그분들의 심적 고통과 고민거리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나도아이를 키우다보면 미안한 마음도 생기고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 죄책감으로 인해 아이에게 뭔가 변화된 모습이 보이거나 부족한 모습이 보이는 순가 그게 내 죄이기 때문에 마주하기 어려워진다. 그걸로 괴롭워질때도 있다

그런데 아이는 백지다. 그곳에 그림을 그리고 모양을 만들어주는건 어른이다. 아이를 통해 보이는 못난 모습들은 내 못난 모습들일 가능성이 99%인것같다. 내가 나를 바라보기는 현실생활에서는 좀 힘든데 그걸 아이가 해준다. 아이는 엄마를 그대로 따라한다. 그것에 대해 괴로워하며 애를 고치려고 하지 말고, 그 모습 그대로여도 그게 내모습이다라는 마음으로 나 자신을 사랑하며 내 아이를 사랑해야겠다.

아이에게 짜증날때마다 내 화를 인정하고, 아 이렇게 가다가는 나중에 우리 애가 나한테 짜증을 내겠구나. 그러더라도 그게 다 내 잘못이다. 아 역시 난 쓰레기군. 하고 맘먹고 조금씩이나마 발전해야지. 하고 좀 과격하게 맘을 먹어보다가 어쨌든 그 모든게 다 나로 인한거고, 그걸 받아들이고 앞으로는 자제해야지 하고 마음을 먹고 나아지면 된다. 그렇게 믿고 생활해야 할 것 같다.

참고로 이 글을 이미 며칠전에 써놓고 임시저장을 하고 여기부터 다시 쓰는데, 이렇게 맘을 먹어야겠다고 썼음에도 그 사이 몇번이나 아이에게 짜증을 내고야 말았다. 나는 나쁜 엄마다. 하지만 나쁜 엄마라고 자책은 하되, 내 스스로를 너무 몰아넣지는 않아야겠다. 불완전한 인간이니까. 그리고 그렇게 짜증을 냈을때는 반드시 안아주고 왜 화가 났었는지 말해주고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있다. 이거라도 잘하자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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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나는 육아와 직장일과 공부로 너무 힘들어서 집에서도 나 힘들다고 티를 팍팍 내고 싶어서 한숨이 점점 는다. 괜히 애기한테 짜증을 내면서 남편한테 힘듦을 호소하기도 한다. 그런 내가 짜증나고 밉지만 그렇게라도 나 힘들다고 티를 내게 된다.


더 많이 하면 더 알아주겠지 싶었는데 사소한 계기로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힘듦을 누군가가 알아주지  않는게 아니라 그건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직장에서 유난히 한숨을 많이 쉬는 사람이 있다. 너무 많이 쉬어서 옆에만 있으면 없던 엔도르핀도 사라진다. 본인은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다. 인간적으로는 너무나 좋아하는데 사무실에서는 정말 마주치고 싶지 않다. (인간적으로는 매우 좋아합니다만) 안그래도 힘든데 더욱 힘들어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 그를 보면 처음엔 ‘아 정말 힘들겠다’, ‘아 정말 일을 열심히 하는구나’했다. 그러나 어느순간 간사하게 이런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 왜 일을 항상 저렇게 할까’, ‘저렇게 힘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하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저렇게 수년간 지내면 본인이 우울증에 걸리는게 아닐까 싶은데 사실은 잘 다니는걸 보고는, 어느순간 ‘아 할만한가보다. 그냥 습관으로 저러는구나’하고 아예 관심을 끊게 된다.


집에서 나는 솔직히 너무 힘들지만, 나도 집에서 한숨이나 짜증으로 힘듦을 호소해서는 안된다고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상대방이 내 힘듦을 이해해주기도 전에 나가떨어지게 만들수도 있겠다 싶었다. 사람 마음이란 참 간사하고 어렵다.

힘들면 힘들다고 정확히 말하고, 뭘 먹으면 스트레스가 풀릴지, 어떨때는 어떻게 해달라고 할지 명확히 말하는 연습을 해야할 것 같다. 가까운 사람이 내 맘을 찰떡같이 알아주는것도 물론 좋지만, 그렇게 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일방적'인 기대다. 그리고 상대방도 많이 피곤하다. 그 점을 명확히 인지하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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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씹덕사. 우리 아이는 잘 때 물을 너무 많이 찾는다. 나는 너무 졸려서 짜증을 낼때도 있는데, 물론 항상 잘 갖다주지만 자꾸 이러면 나중에 배변훈련에도 나쁠것같고 혼을 내기도 그렇고(사실은 자격부족이지만) 꾹 참다가 가끔 너무 졸려서 폭발하는 것이다.

요즘은 내가 이래저래 극강의 피로감을 호소하는데 새벽 2시에 아이가 깼다. 물을 달라고 했다. 잠들기 직전에 물이 아주 조금 남아서 재촉하면서 그냥 자라고 겨우 달래서 그냥 재워서 속으로 만세를 불렀는데, 결국은 2시에 깨서 물을 달란다.

겨우 진정했지만(너무 졸려서) 자꾸 왜 물을 먹냐고 밤에 너무 많이 마시면 안좋다고 내가 또 엄마답지 못하세 틱틱 거리면서 주방에 가서 물을 갖다 줬다. 그때까지 얌전히 앉아있다가 내가 컵에 물을 떠서 갖다주니 그걸 받아들면서 속상한 표정으로 물이 없으면 속상해하는 것이다. 그 특유의 속상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다.

나도 잠들면서 기침이 수도없이 나오는 요즘, 원래도 물을 잘 먹는 아이가 얼마나 목이 말랐을까. 짜증이나 훈육 뒤에는 언제나 더 큰 자책감과 죄책감이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법. 이번에는 완전히 역풍을 맞았다. 목이 말라서 달라는걸 나는 왜 그리 짜증을 낸걸까. 어차피 갖다줄거 갖다주면 되는데! 이제는 아예 물을 방에 갖다놔야겠다.

이제 자기 감정도 표현할줄알고, 울지않고 말하는 법도 알다니, 언제 또 이렇게 훌쩍 컸나 모르겠다. 너무나 사랑스럽고 지나는 이시간이 아쉽고. 아이로 인해 이날도 반성하면서 보냈다. 아이가 나 공부하라고 새벽 2시에 깨워준건데 다시 자다니 이건 내 실수. 내일부터는 철야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 하는 아이를 위해 이제 퇴근하자마자 잘 분위기를 바로 조성한다. 나는 잘때도 바로 안자고 아이와 한~참을 대화하고 놀다가 자기 때문에 최대한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할 것 같다. 아침에는 7시에 기상이다. 나때문에 일찍 일어나는 아이가 가엽고 안쓰럽다. 그리고 가끔 컨디션이 나도 안좋을때 이 가엽다는 생각이 하늘을 찌르면 그날은 또 하루종일 죄책감에 시달린다. 안쓰럽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그냥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야한다.

그래서 아침에 사탕으로도 깨우고 흔들어도 깨우는데 최근 효과적인 방법은 '방탄 형아들'이다. 엄마가 방탄소년단 팬이다보니 같이 시상식을 챙겨봤다. 이녀석이, 엄마가 좋아하는것을 깨닫고 같이 좋아하기 시작한다. 역시 아이는 어른들의 거울이다. 아침에 안일어나는 아이를 향해 '어!! 방탄 형아들 나온다~~'했더니 뻥 안치고 벌떡 일어난 적이 있다. 그리고 가끔 방탄소년단의 idol노래가 나오면 '이거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지이?'한다. 그리고 열심히 부른다. 3살짜리가 부를 수 있는 최대치로 노래를 불러준다. 엄마가 좋아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정말 사랑스러운 존재다. 사랑하기도 부족한데 짜증 내지 말자. 이 모자란 애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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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비쇼를 예매했다. 광고는 아니다. 아이챌린지랑 관련이 1도 없다. 근데 프로그램 회원으로 있으면서 뭔가 큰 혜택을 받는것같아서 그냥 좋다. 나도 드디어 아기들 쇼를 예매하는 구나. 설레버렸다. 맙소사. 우리 애기는 나를 닮아서 사람 많고 번잡한걸 싫어한다. 심지어 어린이집에서도 아이들이 하원하기 시작하여 4명 정도 남았을때부터 급격히 컨디션이 좋아진다고 한다. 나도 사실 영화관 외에는 공연을 즐겨보지는 않는다. 공연은 좋아하지만.

아이를 낳기 전엔 몰랐다. 왜 저런 쇼를 열심히 가는지. 상술이다 생각했다. 그런데 그야말로 상술이 맞고 그건 아이들의 즐거움을 확실히 보장해주는 상술이었다. 엄마들도 다 안다. 상술이고 비싸다는걸. 그래도 아이가 확실히 좋아한다면 무조건 부모들은 갈 것이다. 그래서 예매했다. 남편것까지 다. 오예 신난다.

그러면서 또 역시 콘텐츠가 힘이다 하고 느꼈다. 그런거 우리아이는 잘 안봐서(?) 잘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그 범주는 생각보다 넓었다. 유튜브 등을 보면서 캐릭터를 알게되면 그 캐릭터를 확실히 좋아하게 된다. 남들 다 할 때 안하고 27개월이 돼서야 시작한 호비 월령 프로그램은 이제 빛을 발하고 있다. 죠니는 항상 호비와 같이 잔다. 어린이집에도 데리고 간다. 애착인형이 됐다.

호비는 어쩌고 , 베니는 어쩌고 하는걸 보면 너무 귀엽다. 실제로 보는건 현실괴리가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 우려를 불식시킨 존재가 있었다. 바로 엄마까투리다. 애니메이션을 어쩌다 보게된 죠니는, 그 엄마카투리 뮤지컬을 찍은 동영상도 그렇게 신나게 본다. 그걸 보고 느꼈다. 호비 뮤지컬을 하면 꼭 보여주겠다고.

요즘은 아이와 여기저기 다니는걸 계획하는게 즐겁다. 뭐든 상관없다. 시각적인 즐거움이나 촉각에 자극이 되는것이면 더 좋을것같다. 그래서 얼마전에 슈가플래닛도 다녀왔다. 나는 대략 39개월부터는 기억이 나는 편인데 아마 그 전에도 단편적으로 있긴 있었을 것 같다.

그 이후로도 꽤 인상깊게 기억이 남는게 몇가지 있다. 인생 전체로 보면 너무 찰나고, 드문드문 기억이긴한데 몇가지 기억은 정말 따뜻하고 진하게 남아있다. 별 의미는 없다. 내가 동생 유모차를 끌어준 것. 내가 풍선을 사달라고 해서 엄마가 사준 것. 집에 걸려있던 파란 색채의 호수와 산 그림을 항상 멍하게 바라봤던 것. 아빠가 무슨색 차를 살까 하고 물어보셨는데 내가 흰색이라고 해서 그때문인지 지금까지도 항상 하얀색이라는 점. 엄마가 고구마줄기에 밥을 비벼 드시는걸 같이 먹는걸 좋아했던 것 등등. 엄마는 기억하지 못할수도 있는 그런 순간들. 나는 그냥 이 의미없지만 사소한 몇가지 잔상이 강렬한데 그게 느낌이 상당히 좋다. 이런 기억들이 이제 슬슬 아들의 머릿속에 남을 걸 생각하니 내가 이것저것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죠니가 좋아해줬으면 좋겠다. 엄마아빠랑 뭔가 구경하러 가는 느낌이 좋고 신나고 설레는 느낌이라는걸 무의식적으로 느껴주길. 내가 무언가를 너에게 해줘서 내가 기쁜게 아니라, 그 기쁜 마음이 은근히 일상에 소확행을 주는 원동력이라 네가 나중에 뭔가 할 때 즐거움으로 무언가를 보러가길.

혹시 관심있는데 검색하기 귀찮으신 분(나?)들을 위해 예매 사이트 : http://ticket.interpark.com/search/ticket.asp?search=%uD638%uBE44%uC1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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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난다. 요즘 유난히 잠에서 깨지 못하는 애기를 억지로 깨운다. “엄마 회사갈 때 뽀뽀해준댔잖아. 뽀뽀 안해줄꺼야?”라고 세번정도 말하니 입술만 쭉 나온다. 그리고 뽀뽀를 잠결에 하고 뒤로 다이빙해서 물 속으로 들어가는 잠수부처럼 다시 이불을 향해 등을 대며 나 잘래한다.

찡찡대면서 일어나서 엄마랑 할아버지랑 같이 나갈거야하길래 아직 깜깜한 오전이지만 10분만에 준비해서 애를 안고 나간다. 나도 일어난지 몇십분 안돼서 온몸이 쑤시지만 들쳐업고 나간다. 그래야 나도 출근하고 할아버지도 출근하신다. 무엇보다 어린이집에 1빠로 등원하는 아기가 안쓰럽다.

오늘 고민은 어린이집 대기와 시터다. 시터이모는 이사를 가셨기 때문에 2월까지만 맡아주시기로 했다. 돈을 더 드리고라도 계속 함께하고 싶지만 그분도 그분의 사정이 있으니 어쩔 수 없나보다. 정말 너무나 감사한 인연이다. 평생 감사해야지. 처음으로 남의 손에 맡기고 회사를 갔을 때 얼마나 긴장되던지 모른다. 그렇게 일년이 훨씬 넘는 기간동안 한번도 섭섭한 적 없이 너무나 잘 돌봐주셔서 행복했다.

사정이 이리 됐으니 어쨌든 다른 분을 구해야하는 심리적인 압박감, 그리고 지금 다니는 어린이집 다음에 다닐 어린이집 대기를 걸어야하는데 정보가 없는 상황에 또 이걸 처음부터 다 알아봐야한다는 압박감. 그와중에 나는 업무도 해야하고 내가 또 할 공부도 해야하고. 새해부터 정신없다.

그래도 이만한게 어디냐.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지. 아이에게 못할 이 짓도, 어쨌든 끝이 있고 나는 또 다른 목표가 있기 때문에 힘을 내야한다. 워킹맘으로서보다 그냥 직장인으로서 지금 삶의 장기적인 그림을 그려본다. 답이 안나오지만 그려야 한다. 내 인생의 목표는 뭘 성취하고 그런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지금처럼 지내기 위해 필요한걸 지키는 과정의 연속일 뿐이다.

퇴근때가 되면 이제 퇴근을 위한 업무 마무리, 퇴근예측을 해야한다. 업무가 너무 많아서 못끝낼것같은 경우에는 남편한테 연락해서 남편의 퇴근 계획을 알아낸다. 그래야 혹시 더 늦어도 제 시간에 시터이모 보내드리고 애기를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매순간이 바쁘다. 그래서 워킹맘은 바쁘다. 그냥 체력적으로 힘든것도 힘든거지만 많은 플랜들을 계속 굴려야 한다.

항상 옆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시는 부모님, 그리고 내 화 다 받아주고 먹을것도 많이 사주는 남편, 그리고 떡두꺼비 같은 내새끼. 새해에도 복 많이 받자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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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으로의 600일 그리고 제3의 인생을 준비한지 약 120일, 사실 워킹맘으로서의 600일이라는 사실은 생각보다 막 성취감이 있거나 하진 않았다. 해냈다는 것 보다는 겨우 잘 버텼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최근엔 어린이집과 이사 관련해서 큰 결정을 하고나니 후련함보다는 그 다음 산이 더 거대하게 느껴진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이 무겁게 다가온다. 그 선택은 나의 인생만을 좌지우지하지 않고 내가 책임져야하는 한 아이에게 더 크게 다가온다. 

언젠가부터 무료새해운세를 검색한다. 내 힘으로만 되는게 아니라는 것을 체감하고 부터는 심리적인 안정이라도 얻게 그런 사이트를 좋아한다. 초록 검색창에서도 이맘때쯤은 검색에 나온다. 아이와 전투를 하고 잠시 바닥에 드러누워 아무소리도 안나는 공기를 느껴본다. 햇빛이 들어오고 방바닥이 따뜻하다. 이게 행복이구나 싶다가, 예전에 이짓거리(?)만 하고 살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또 전투가 행복하게 느껴진다. 종이한창 차이로 달라진다. 평소에는 이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순간적으로 긍정적인 마인드가 금방 세팅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건 또 동전의 양면과 같지. 그 언제라도 뒤집으면 다시 불행한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아무래도 잠이 부족하고 체력이 딸리면 자꾸 그 판을 뒤집게 되는 것 같다.

이런저런 넋두리를 했다. 2019년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명확하다. 이뤄질지 안 이뤄질지는 저적으로 내 손에 달렸다. 자꾸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스트레스 해소의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어제도 공부는 안하고 잠만 못자고 스트레스만 받는 시간을 보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스트레스 받을 그 시간에 한 단원을 끝냈을 것 같다. 그래도 결국 또 이렇게 글이라도 써서 스트레스를 좀 풀어본다. 

이와중에 새해 인사발령이 또 스트레스풀하다. 칼퇴가 불가능한 구조인 곳으로 편입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내 기분이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내 아이를 제 시간에 마주하기 위해서는 칼퇴가 필수다. 그냥 깔끔하게 찍힐 예정이다. 올해 2019년은 제대로 픽 당하는 걸로. 나는 어차피 이 직장에서 욕심이 없기 때문에 찍히는 삶을 택하겠다. 하지만 이런 마음에도 불편함은 여전하다. 지금 팀장은 다른건 몰라도 휴가사용, 출퇴근 지적질은 거의 없는 편이었다. 일이 지저분하고 불만 투성이였지만 워라밸은 좋았다. 그래서 사실 내가 출퇴근 왕복 3시간반이라도 버틴 것이다. 그것은 팩트다. 그런데 그 최소 선이 무너지면 내 선택은 퇴직뿐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합법적인것이다. 아무튼 이런 부서에서조차 6시 땡하고 나올 때 약간 불편함이 있긴 있었는데(다른 직원들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대놓고 눈치주는 부서에서의 칼퇴는 나 같은 소심러에게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사회는 아직 멀었다. 정해진 시간 내에 일을 도저히 못끝내서 타의적인 자의로 야근을 하게 할 것이 아니라, 6시까지 끝날 만큼의 과업을 수행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내 부서에는 매출은 늘어나는데 사람은 2명이 줄었다. 어떻게든 버티면 어떻게든 굴러가는 줄 안다. 그게 문제다. 나만 이상한 나라에서 사는것같이 느껴지다가도 대부분의 회사 리뷰가 다 이러니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인것같다. 이런 사회에서 나는 살아야한다. 그러면 어차피 그럴거면 내가 더 보상을 받을 수 있고 내가 내 시간을 조금이라도 조절할 수 있고 내가 좀더 일을 할 때 수월하게 하고 성취감이 있을만한 전문적인 분야가 있기를 바란다. 지금 직장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또 다시 내 선택을 합리화하고 자뻑(?)아닌 자축하며, 흐트러진 기운을 다시 붙잡아 배수진을 친 마음으로 새해 열정을 불사질러야겠다.

쓰다보니 워킹맘으로서의 얘기를 빠트렸네. 이사갈 집을 계약했다. 옆단지다. 그런데 어린이집은 그대로 다니기로 했다. 적응력이 빠른 아이들도 어린이집을 바꾸는건 매우 힘든 일이라고 하는데 우리 아들은 적응력인지 뭔지는 몰라도 환경변화에 극히 예민하다. 하원도우미도 바꿔야하는 상황에 어린이집까지 바꾸는건 안되겠다는 판단이 서는 순간, 집 계약을 완료했다. 발등에 떨어진 불끄기 식이다. 많은 선택지 중에서 확고한 우선순위가 있으면 결정이 좀 쉽다. 이번 이동의 목적은 집이 너무 작은것에 대한 개선, 그리고 그와중에 어린이집을 변경하지 않아야하므로 최대한 가까운 곳으로 이전하는 것이다. 

횡설수설 쓰다보니 내가쓰고도 좋은 생각인것같다. 인생의 선택이 백지기준으로 하면 뭐든 아쉬움만 남을 것 같다. 가지 못한 길에대한 후회도 너무 클 것 같다. 하지만 인생은 이미 벌어진 일 다음에 벌어질 일에 대한 커버라고 생각하니 아이러니하게 선택이 편해져버린다. 어린이집의 결정같은 문제다. 도대체 다음 단지로 어디를 가야할지, 이 단지는 이게 좋고 저 단지는 저게좋고 고민만 한달을 넘게 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어린이집이 1순위였다. 그렇게 결정되는 순간 단지를 정해버렸다. 내가 이직을 하려는 이유도 똑같다. 첫 취업이야 뭐든 간절했고 내가 어디서 살게될지(자취를 할지 말지) 이런것도 다 열려있는 결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쏟아부은 자본과 시간이 있고 아이가 있다. 그 다음의 선택은 이에 맞춰서 하는 것이다. 선택의 폭이 좁아져서 슬프기도 하면서 좋기도 하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살다보면 나도 어느새 우리 엄마아빠 나이가 돼있겠지.

아이는 이제 4살이 됐다. 긴장된다. 나는 4살때정도부터 기억이 있다. 이제부터는 아들도 성인이 될때까지 남을 수 있는 기억을 만들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더욱 책임이 막중하다. 그리고 또 기대된다. 이제 내 아이와 기억을 공유할 수 있게 됐다. 멋지고 성공한 엄마는 모르겠고, 행복한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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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는 이렇게 키우고 싶다.

다른사람의 기쁨과 슬픔에 공감할 줄 알고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할 줄 알고

타인을 배려하되 자존감을 가지며

무엇을 하고자 할 때 동기부여를 해낼 수 있는 사람

 

나는 그렇게 살고 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려고 항상 노력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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